성격심리학 개론

머레이의 욕구 및 동기이론

안전투자 달인 2024. 7. 2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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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레이의 욕구 및 동기 이론이란?

머레이는 생화학과 의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체계적인 인간 연구를 수행하여 성격심리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성격은 경계선 없는 아프리카 정글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학(personology)"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인간의 삶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관한 연구를 의미합니다.

머레이는 타당성 있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성격 연구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그는 평생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자료를 일관성 있는 이론적 구성개념(constructs)으로 조직화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현재 널리 사용되는 투사검사인 주제통각검사(Thematic Apperception Test: TAT)를 개발했습니다.

머레이의 인간학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보다 정교화하고 새롭게 부각시켰습니다. 프로이트의 개념은 임상적으로는 타당하다고 여겨졌지만, 과학적 연구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머레이는 프로이트의 여러 개념에 조작적 정의를 부여하고 구체적 자료를 수집하여 과학적인 성격 구성개념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머레이는 프로이트가 사용한 개념인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성격을 구분했습니다. 그는 기본적인 추동과 욕구의 원천이 원초아라는 점에 동의했지만, 원초아에는 부정적인 충동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초자아는 사회 환경의 내재화된 표상이라고 보았으며, 자아는 조직화된 성격의 자의식적인 부분으로서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머레이는 프로이트보다 자아의 역할과 기능을 더 강조했습니다.

 

 

 

 

머레이의 생애

머레이의 생애를 알아보자. 

머레이(Henry A. Murray, 1893-1988)는 성격심리학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뉴욕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사시라고 알려진 시각 장애를 겪었습니다. 9살 때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평생 시각 결함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1915년, 머레이는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1919년에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콜럼비아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 학위도 취득했으며, 1927년에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생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콜럼비아 장로교회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 실습을 하던 중, 머레이는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될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돌보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발생학 연구기관인 록펠러 기관(Rockefeller Institute)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융의 심리유형(Psychological Types)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관심을 생물학에서 심리학으로 전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에 돌아온 머레이는 하버드 대학의 새로 만들어진 심리클리닉에서 프린스(Morton Prince)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접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28년에는 보스턴 정신분석학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1933년에는 미국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1938년, 머레이는 '성격 탐색(Explorations in Personality)'이라는 저서를 발간하며 연구의 절정에 올랐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사람들의 행동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욕구(needs)와 압력(press)에 대한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즉, 그는 성격에 대한 체계적이고 역동적인 접근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머레이는 군대 의료기관에서 일했습니다. 전쟁 후 그는 하버드로 돌아와 사회관계 분야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클러크혼(C. Kluckhohn)과 쉬나이더(D. Schneider)와 함께 '자연, 사회, 그리고 문화에서 성격(Personality in Nature, Society, and Culture)'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1961년, 머레이는 미국심리학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고, 1969년에는 미국심리학 재단으로부터 심리학에 대한 주요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머레이의 성격심리학 연구는 단순히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고려하는 통합적인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그는 개인의 내적 동기와 외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는 성격 이해를 추구했습니다.

특히 그의 '욕구(needs)와 압력(press)' 개념은 성격 형성에 있어 개인의 내적 욕구와 외부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것으로, 이후 성격심리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를 통해 머레이는 성격을 단순한 특성이 아닌 역동적인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머레이의 연구는 또한 심리학과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그는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현대 성격심리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날 머레이의 성격이론은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의 업적은 성격심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사고와 탐구 정신은 후대 학자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머레이의 욕구 및 동기이론의 주요 개념

욕구 및 동기이론의 주요 개념을 적립한

머레이(Henry A. Murray, 1893-1988)는 성격심리학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뉴욕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사시라고 알려진 시각 장애를 겪었습니다. 9살 때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평생 시각 결함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1915년, 머레이는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1919년에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콜럼비아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 학위도 취득했으며, 1927년에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생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콜럼비아 장로교회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 실습을 하던 중, 머레이는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될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돌보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발생학 연구기관인 록펠러 기관(Rockefeller Institute)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융의 심리유형(Psychological Types)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관심을 생물학에서 심리학으로 전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에 돌아온 머레이는 하버드 대학의 새로 만들어진 심리클리닉에서 프린스(Morton Prince)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접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28년에는 보스턴 정신분석학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1933년에는 미국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1938년, 머레이는 '성격 탐색(Explorations in Personality)'이라는 저서를 발간하며 연구의 절정에 올랐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사람들의 행동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욕구(needs)와 압력(press)에 대한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즉, 그는 성격에 대한 체계적이고 역동적인 접근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머레이는 군대 의료기관에서 일했습니다. 전쟁 후 그는 하버드로 돌아와 사회관계 분야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클러크혼(C. Kluckhohn)과 쉬나이더(D. Schneider)와 함께 '자연, 사회, 그리고 문화에서 성격(Personality in Nature, Society, and Culture)'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1961년, 머레이는 미국심리학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고, 1969년에는 미국심리학 재단으로부터 심리학에 대한 주요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머레이의 성격심리학 연구는 단순히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고려하는 통합적인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그는 개인의 내적 동기와 외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는 성격 이해를 추구했습니다.

특히 그의 '욕구(needs)와 압력(press)' 개념은 성격 형성에 있어 개인의 내적 욕구와 외부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것으로, 이후 성격심리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를 통해 머레이는 성격을 단순한 특성이 아닌 역동적인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머레이의 연구는 또한 심리학과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그는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현대 성격심리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날 머레이의 성격이론은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의 업적은 성격심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사고와 탐구 정신은 후대 학자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